마닐라 BGC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치안이 가장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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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5-04-26 17:27본문
마닐라 BGC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치안이 가장 안정된 지역이라고 불리는 곳인데도 최근 이곳에서도 총기 강도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앙헬레스 라자틴 시장은 이 사건에 대해서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명하였고 시 경찰에 용의자 식별과 체포를 72시간 안에 해결하라며 모든 역량을 투입하라는 지시를 하였고, 어제오늘 해당 사건에 대한 긴급 대응 회의를 통해 검문검색 강화와 용의자 식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현지 브리핑이 있었고 앙헬레스 한인회는 200,000페소(한화 5백만 원)를 현상금을 걸고 사건 용의자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현재 상황 4월 22일물론 강력 범죄이니까 필리핀 경찰도 나름의 시스템을 가지고 범인 체포를 하겠지만 우리나라 같은 사회적 보안 시스템이 취약하기 때문에 용의자를 찾는 것에만 들이는 시간이 엄청나며 또 체포 후 기소를 하더라도 이후의 시간 소요 또한 무시 못 합니다. 이러는 과정에서 피해자 가족만 더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또 다른 이유는, 외국인 대상 범죄에는 경찰력이 집중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습니다.무슨 말이냐면, 대부분 관광객이나 현지에 살고 있는 교민들은 대부분 사건 이후 가족이 사건에 대한 후속 조치를 해 주어야 하는데 현실적인 문제들 특히, 언어적인 문제와 금전적인 문제로 인하여 사건에 대한 푸시를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겉으로 입 발린 말 말고 진심으로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지난 4월 20일 오후 1시 50분.용의자를 찾기 위해 한인회가 현상금을 걸고 제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오네요.이런 상황에 처하시면 다 줘 버리세요. 그러면 됩니다.정치적 불안성(일단 앙헬레스 한인회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또한 총기 사고가 발생했는데, 구급차가 오는데 30분이 넘게 걸렸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은 무엇을 설명하는 것일까요?다시 한번 더 허망하게 사고를 당하신 분께 명복을 빕니다.사건 발생 후, 현지 교민의 도움으로 CPR을 진행했으나 구급차가 30분이나 지나 도착하였고, 이미 심정지가 일어난 상황이라 병원 도착했지만 안타깝게 사망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필리핀을 비난해 봐야 바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다를 거라 믿어요.이런 부분은 필리핀 정부에서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하는 행태에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사건 발생그리고 대응하지 마세요. 양손들고 대항할 의사 없음을 알리고 있는 거 줘 버리세요.필리핀 치안 문제의 원인 방한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 6·25전쟁에 참전해 크고 작은 전투에서 '무패의 신화'를 쌓은 에티오피아의 '칵뉴 대대'(Kagnew Battalion)는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3년간 우리나라에 주둔하며 휴전선 경비와 전후 복구를 도왔다.칵뉴 대대 부대원들은 월급 일부를 모아 종전 직전인 1953년 4월 경기도 동두천에 '보화고아원'이라는 이름의 보육원을 세워 전쟁고아들을 돌보기도 했다. 보화(Bowha)는 에티오피아의 공용어인 암하라어로 '하느님의 은혜'란 뜻이다. 에티오피아 군인과 보화원 어린이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보화고아원은 칵뉴 부대가 연락단을 남기고 철수한 1956년 8월까지 운영됐다. 당시 고아원에서 일곱살이던 아이가 6·25전쟁 60주년 때 참전용사들을 직접 찾아가 보은 인사를 하기도 했다. 에티오피아로 돌아온 참전용사들은 수도 아디스아바바 시내의 `코리아 사파르'(한국촌)라는 마을에서 함께 지냈으나 이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오랜 기간에 걸친 극심한 가뭄 등으로 경제가 파탄 나고 고위층의 부정부패까지 겹치면서 1974년 군부 쿠데타가 발생해 이듬해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섰다. 그동안 전쟁영웅으로 칭송받던 참전용사들은 졸지에 동맹군(공산군)과 싸운 배신자로 몰려 고초를 겪었다.1991년 공산 독재정권이 붕괴하고 친서방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장기 내전의 후유증 등으로 경제가 여전히 어렵다 보니 참전용사나 그 후손들의 생활 여건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우리나라 정부가 에티오피아에 보은의 손길을 내민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지방자치단체, 기업, 비정부기구(NGO) 등이 나서 의료시설·학교·복지회관 등을 지어주고 참전용사와 후손에게 생활비와 장학금을 지급하는가 하면 후손들의 한국 유학과 기술교육도 돕고 있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이름 새긴 명비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해 8월에는 아디스아바바에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참전용사 2천482명의 이름을 새긴 명비가 세워졌다. 에티오피아가 파병한 병력은 총 3천518명으로 알려졌지만, 공산정권 때 참전 기록이 소실돼 명단이 제대로 확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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