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선종한 로마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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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댓글 0건 조회 11회 작성일 25-04-22 08:49본문
21일 선종한 로마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21일 선종한 로마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5월 10일 로마의 오디토리움 델라 콘칠리아치오네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AP=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젊은 시절부터 폐가 약했다. 21살이던 1957년 늑막염을 앓으며 오른쪽 폐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고인은 지난 2월 14일 폐렴으로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후에도 상태가 악화돼 여러 차례 호흡곤란을 일으켰고 고용량 산소 치료와 수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3월 23일 38일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해 최근 외부활동을 서서히 재개한 참이었다. 선종 전날인 20일은 부활절이었다.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2층 발코니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도들을 향해 “형제자매 여러분, 행복한 부활절입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그러고 하루 만에 선종 소식이 전해졌다. 이날 안젤로 코마스트리 추기경이 대독한 부활절 연설에서 교황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휴전을 촉구한다”고 했다. 2000년 가톨릭 역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인물이다. 유럽 출신이 아니라 남미 출신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역사를 통틀어 교황은 늘 이탈리아인의 전유물이었다. 이유가 있다. 교황은 원래 로마의 주교였다. 로마는 제국이었고, 로마 주교는 교황이 됐다.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대다수도 이탈리아인이다. 이탈리아의 울타리를 벗어나 교황이 된 첫 사례가 요한 바오로 2세(폴란드)다. 이후 베네딕토 16세(독일)로 이어졌지만, 여전히 유럽 출신이 교황이 됐다. 유럽의 울타리를 벗어난 첫 교황이 바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2013년 3월 교황 선출 당시에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물론 남미의 가톨릭 성장세와 고인이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이란 점이 ‘남미 출신 교황’을 가능케 한 징검다리로 작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격식보다는 본질을 중시했다. 그가 21일 선종한 로마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5월 10일 로마의 오디토리움 델라 콘칠리아치오네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AP=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젊은 시절부터 폐가 약했다. 21살이던 1957년 늑막염을 앓으며 오른쪽 폐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고인은 지난 2월 14일 폐렴으로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후에도 상태가 악화돼 여러 차례 호흡곤란을 일으켰고 고용량 산소 치료와 수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3월 23일 38일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해 최근 외부활동을 서서히 재개한 참이었다. 선종 전날인 20일은 부활절이었다.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2층 발코니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도들을 향해 “형제자매 여러분, 행복한 부활절입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그러고 하루 만에 선종 소식이 전해졌다. 이날 안젤로 코마스트리 추기경이 대독한 부활절 연설에서 교황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휴전을 촉구한다”고 했다. 2000년 가톨릭 역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인물이다. 유럽 출신이 아니라 남미 출신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역사를 통틀어 교황은 늘 이탈리아인의 전유물이었다. 이유가 있다. 교황은 원래 로마의 주교였다. 로마는 제국이었고, 로마 주교는 교황이 됐다.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대다수도 이탈리아인이다. 이탈리아의 울타리를 벗어나 교황이 된 첫 사례가 요한 바오로 2세(폴란드)다. 이후 베네딕토 16세(독일)로 이어졌지만, 여전히 유럽 출신이 교황이 됐다. 유럽의 울타리를 벗어난 첫 교황이 바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2013년 3월 교황 선출 당시에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물론 남미의 가톨릭 성장세와 고인이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이란 점이 ‘남미 출신 교황’을 가능케 한 징검다리로 작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격식보다는 본질을 중시했다. 그가 일반 사제가 아니라 수도회(예수회) 출신인 까닭이 크다. 고인에게는 오랜 수도와 묵상을 통해 일구어낸 영성가의 눈이 있었다. 이전 교황들이 교리와 제도에 묶여 주저주저하던 사안에 대해서도 과감한 개혁과 파격적 메시지를 내놓았다. 2014년 프란치스코
21일 선종한 로마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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